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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설레임에 설렘을 준비 중이다.

섬별 줄리아헤븐 김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5-01 13:08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수필

시간이 지나갈수록 설레임의 강도가 높아져서인지 자신의 존재를 더욱 크게 드러내려는 듯 ‘콩콩 콩콩’  ‘두근두근’ ……
유연하게 목구멍으로 흐르는 커피의 향긋한 향을 리드미컬한 미세한 리듬의 심장박동에 섞어 살며시 눈을 내리 깔고 나는 설레임에 설레임을 준비 중이다.
 
연분홍빛 벚 꽃잎으로 하늘과 땅을 물들여 가는 울 아들 녀석의 봄 방학.

시작과 함께 8박9일간의 여정으로 이탈리아로 향한 울 아들녀석이 새벽 세시부터 부산스럽게 새 날을 열며, 유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시야에서 사라진 건 지난 월요일 새벽5시가 채 안된 시각이었다. 희뽀얀 안개 저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앞차의 불빛은 별빛을 뚫고 빨려 들어 가는 듯, 마치 영화 ‘스타워즈’ 의 한 장면처럼, 가시거리가 2, 3미터도 채 안되어 짙게 깔린 뿌연 안개 속을 내뚫으며 달리는 이른 새벽의 도로는 마치, 며칠간의 새로운 세상이 내게 달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된 나는 처음 날은 오히려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새로운 또 다른 세상의 하루가 그냥 지나 가버렸다. 늘 그렇게 꿈꾸었던 시간의 자유가 되려 생뚱맞아 그리 크지 않은 집구석임에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적막함이 나를 당황케 한다.
살가운 계집아이처럼 때론, 호기심이 가득 담긴 다섯 살 꼬마녀석처럼 잠시도 입을 다물지 못했던 울 아들 녀석의 재잘거림에 길들여져 있었던 탓인지, 정말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게 찾아온 자유가 나를 무색하게 만든다. 볕이 좋아 가벼운 책 하나 달랑 들고 집 앞의 공원을 찾아 한껏 따스한 봄 볕의 햇살을 즐기며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나의 오후를 달래보지만…… 가슴 저 켠에서 말을 한다……
‘쓸쓸해’ 
어제와 같은 빛깔의 따사로운 햇살도 나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지......
둘째 날도 그렇게 지나고. 셋째 날도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보내고 넷째 날이 되어서야 비로서, 나를 위해 근사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 했다. 호박이랑, 양파, 빨강 노랑 초록의 피망을 채 썰어 볶으니 두 눈동자 안에도 입맛이 도는지 방울방울 눈물을 만들어 흘려 보낸다. 천덕꾸러기 마냥 냉장고 한 켠에 자리잡아 내게 마음의 갈등을 던져주던 찬 밥 마저 섞어 놓으니 매운 양파 향에 버무려진 행복이 내 뺨을 적신다. 알록달록 주변의 현란한 색들과 어우러진 희꾸리했던 찬 밥의 환골탈태가 무료하게 보내던 나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것처럼, 찬 밥의 뒤 바뀐 운명에 억지스럽게 의미를 부여하니, 이내 기분이 좋아지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바빠지기 시작 했다.
‘띵똥’  아들내미 여행 보내놓고 혼자 있을 것 같아 지나는 길에 방문을 했다는 집사님을 시작으로 모처럼 한가로이 지내고 있을 것 같아 그냥 놀러 왔다는 또 다른 집사님. 그리고 마침 일을 안 하는 날이라 내가 외로울 것 같아서 왔다는 지인. 매일 나를 찾아 와 주는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자칫하면 쓰레기통 속에 쳐 박혔을지도 몰랐을 냉장고 안의 찬 밥 신세에선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의가 아닌 타인에 이끌려 나의 일곱째 날까지 지나가 버렸다. 내가 나의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까 하는 고민도 가져 볼 새도 없이……
‘따르릉’  혼자 청승맞게 굴지 말고 재미있는 영화나 한 편 자기 집에서 보자고 부르는 가까운 친구의 전화를 받고서야, 단 하루 남은 나의 자유 함을 다시 열고 싶어 큰 맘 먹고 거절을 했다.
단지, 해가 저물어 어두컴컴한 현관을 들어 서는 것이 싫다는 이유 하나로……
흔쾌히 이해를 해 주는 친구로 인해 사 나흘 만에 조용한 적막에 들어 설 수 있었다.
아들 녀석이 여행을 가고 나면 어찌어찌 보내겠다……늘어나는 뱃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스포츠 센터를 찾아 운동도 열심히 하고…… ……하고……하고……
연 초에 세우는 청사진마냥 나 혼자만의 시간을 은근 기대했건만
정작 마지막 남은 하루엔 아이러니하게도 내일 집으로 돌아 올, 울 아들 녀석을 위해 김치 전을 부치며 하루를 다 보내게 되었다 나의 주체 할 수 없는 순전히 나의 큰 손 탓으로 인해. 허나, 그것은 여짓것 내가 만들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웰빙의 줄리아 표 김치 전이 탄생 되었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이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 라고 말했던 ‘브리야 사바랭’ 의 말에 공감을 하며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일까?

여짓것 시도해 보지 않던 새로운 방식의 김치 전이 의외의 궁합으로 환상적인 맛의 조화로 인해 내 가슴이 뛰는 것일까? 토마토와 케일, 송이버섯, 호박, 색색 가지 피망에, 당근과 양파, 그리고 고구마를 달걀과 김치까지 넣어 믹서에 갈아 찹쌀가루와 밀가루, 부침가루를 섞으니…… 둘이 먹기엔 어마어마한 양이 되었다.
결국 온종일 기름냄새에 쩔어 나의 마지막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몇 시간을 서 있었던 탓에 다리와 팔은 힘이 들었지만, 한 장 한 장 줄리아 표 김치전이 구워질 때마다 흐뭇하고, 높이 쌓여져 가는 전을 보면서는 뿌듯하니 노동으로 보낸 나의 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즐거웠다. 맛나게 먹어 줄 아들 녀석의 호기심이 담긴 눈망울을 떠 오르니 갑자기 설레이기 시작을 한다. 숙제를 검사 받으며 선생님의 칭찬을 기대하는 초등학교 일 학년생의 상기된 설레임을 담은 것처럼……
 
 아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가 도착 할 시간이 다가 올수록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을 한다. 내 나이 스물 여덟에 처음 밟았던 돌 조각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로마의 도로를 내가 다시 찾았던 때는 그 뒤 칠 년이 흐른 뒤에였다. 처음에 내가 느꼈던 그 경이로웠던 감정을, 그 느낌을 아들녀석도 느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천장벽화의 웅장함과 섬세함에 말문이 터억 막혀 환희에 가득 찬 존경이 묻어나던 그 눈물이 아들녀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을까?
고색 창연한 건축물에 둘러져 느낌부터 남달랐던 로마의 공기를 또, 수많은 창문이며 하얀 테두리가 달빛을 받아 유난히 하얀 선이 더 또렷해서 신비롭기까지 했던 플로렌스의 두오모 성당을 아들도 같이 쳐다보고 나처럼 느꼈을까? ......빛 바랜 사진틀 속에 웃고 있는 내 모습 뒤편으로 보이는 다비드상 앞에 울 아들놈도 서 있어 봤을까?

실은 아들녀석의 이태리 여행은 시작부터 나도 함께하고 있었다.
크리스천이 아니었던 그 당시에 내가 느끼던 감성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지금 울 아들 녀석이 ‘2000년 전의 오늘’의 크리스천들의 흔적을 나 대신 만나고 느끼고…… 아들 녀석의 입을 통해 내게 전해 주길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이 유리 벽 사이로 모습을 감춘 그 순간부터 나는 설레임에 설레임을 준비 중이었다.
이십여 년이 흘렀지만, 그 곳의 변화는 가히 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아이가 탄 비행기가 활주로에 도착을 했다는 안내 표시 판을 보는 순간,
또다시 콩콩콩콩…… 뛰기 시작한다.
 
내 손에 들려 있는 빨간 장미 한 다발이 더 더욱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야릇한 설레임에 분홍빛 홍조를 띠고 울 아들을 기다리는 내 모습은 흡사 풋사랑을 하고 있는 영낙 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다.
왜?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아들 놈에게 그것도 내 달이면 열 여덟 살이 되는 사내녀석에게 장미꽃다발을 줄 생각을 했을까? 
환한 미소를 가득 담고 나타날 아들 녀석에게 빨간 장미를 건네 주는 로맨틱한 엄마를 꿈꾸었나? 쑥스러운 모습으로 주변을 힐끗 거릴 울 아들 녀석의 하얀 손과 하얀 이를 드러내며 들려 줄 이야기를 기대하다 보니, 문득, 상큼한 레몬 향을 떠올리기만 해도 침샘에서 솟구치는 분비물이 입 안을 가득 채우듯 내게 아낌없이 부어 주시는 그 분의 사랑까지 기대하게 된다. 그 나이 또래의 사내애들과 달리 내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쏟아 뱉고 물을 아들 녀석의 입을 통해 비록, 9일 간이었음에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을 함께 하려는 이 마음만으로도 가슴에서 들려 주는 방망이질은 더 더욱 빨라지기만 한다. 사랑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사랑 받는 것을 느낄 수 있듯이 난, 아들이 걸어 나올 창구를 바라보며, 주변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울 아들 녀석이 멋쩍은 얼굴로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빨간 장미 꽃다발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받아 들거라 고 믿기에
나는 지금 설레임에 설레임을 준비 중이다.

2015년 3월 24일          빅토리아 공항에서 울 아들을 기다리며
 * 브리야 사바랭(1755~1826)프랑스와 미국의 사법계에서 법관으로 활동했으나 미식평론가로서 더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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